김광규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분석 해설 정리 및 관련 기출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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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김광규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본문읽기

4·19가 나던 해 세밑 /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 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노래를 /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커를 하러 갔고 /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김광규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02 김광규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EBS의 시선 (해설)

1979년에 발간한 작가의 첫 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에 실린 시로, 기성세대가 된 중년의 화자가 18년 전의 순수했던 청년 시절을 회상하고 현재의 소시민적 삶을 반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젊은 시절의 화자와 친구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꿈을 품고 노래를 목청껏 불렀지만, 18년이 흐른 후의 그들은 세속적 가치를 좇으며 현실 순응적인 소시민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4·19가 불러일으킨 이상과 열정, 순수함을 의미하는 ‘옛사랑’은 이제 ‘희미한 그림자’로만 남아 화자를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 1~19행: 4·19를 겪은 젊은 시절의 순수한 이상과 열정
• 20~37행: 이상과 열정을 잃고 현실에 순응하며 사는
중년의 세속적인 모습
• 38~49행: 변함없는 플라타너스 가로수를 바라보며
느끼는 소시민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

주제 : 젊은 날의 순수와 열정을 잃고 소시민의 삶을 영위하는 4·19 세대의 자기 성찰
화자는 ‘부끄럽지 않은가’와 같은 의문형 표현을 통해 현재 삶에 대한 성찰적 태도를 부각하고 있다.
‘과거–현재’의 순으로 시상을 전개하며 화자의 변화를 드러내고 있다.
‘차가운 방’이라는 공간을 통해 젊은 시절의 열악하고 가난했던 처지를 암시하고 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노래’라는 소재를 통해 젊은 시절의 순수한 열정을 부각하고 있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라는 소재를 통해 경제적으로 안정된 현재의 삶을 드러내고 있다.
‘늪’이라는 공간을 통해 현실에 순응하는 삶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넥타이’는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된 ‘우리’가 착용한 것으로, 이 소재는 ‘우리’가 경제적 안정을 위해 직장인이 되면서 과거의 이상이 아닌 현재의 생활에 구속된 현실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우리 역사의 중요 사건을 배경으로 삼아 경제적 안정에 매몰된 소시민의 삶을 재현한다. 특히 서로 다른 삶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제시하면서 신념의 지향과 생활의 순응 사이에 놓인 소시민의 성찰적 내면을 그린다.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과거와 오랜 시간이 흐른 현재를 대조하면서 과거의 이상과 열정을 잃은 현재의 소시민과 속물화된 사회를 성찰한다.
‘4·19’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소시민의 문제를 제기한다.
‘때 묻지 않은 고민’을 했던 과거의 ‘우리’와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는 현재의 ‘우리’가 대조되고 있다.
이 작품에서 ‘부끄러움’은 ‘우리’가 현재의 소시민적 생활을 반성하며 느끼는 감정으로 볼 수 있다.

03 김광규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THE-깊은독해 (본문 분석)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 1960년이 시적 배경으로 설정되었다. 여기서 ‘세밑’은 한 해의 마지막 때, 연말을 뜻한다. 이후 집단 화자 ‘우리’가 제시되었다. 이때 ‘우리’는 4·19 혁명의 세대를 가리킬 것이다.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 수능 현대시에서 악수를 하거나, 손을 잡으면 연대, 유대감 등을 의미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에서 동지적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 ‘불도 없이 차가운 방’은 젊은 시절의 어려운 여건을 보여준다.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순수한 믿음과 열정이 넘쳤던 젊은 시절의 모습이 나타난다. 윗줄의 ‘차가운 방’과 ‘열띤 토론’의 대조적 이미지를 통해 젊은 시절의 열정을 더욱 부각하고 있다. 이는 현재의 소시민적인 모습과 대비된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은 순수한 이상을 의미하고, 이것을 위해 살아가려고 한 것이 어리석었다고 말한 것은 순진했다는 의미이다. 이때 ‘정치’는 세속적이고 이해타산적인 것을 의미하고, ‘무엇’은 순수한 이상적 가치를 뜻한다. 여기서 ‘어리서게도’라는 표현은 반어적 표현인 것이다. 순수한 이상과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지 않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 ‘혜화동 로터리’는 과거의 순수와 열정이 담긴 공간이다. 이때 ‘대포’는 특별한 안주 없이 큰 술잔으로 마시는 술로, 가난하고 소박한 삶을 뜻하는 소재로서 기능하고 있다.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는 젊은 시절의 순수한 개인적인 고민을 의미한다. 이는 젊은 날의 순수함을 상징한다.

우리는 때 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는 세속적 관심사와는 거리가 멀었음을,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는 순수한 청년 세대만을 가질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노래는 현실적 이해관계가 아닌, 순수한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노래를 ‘목청껏’ 부른 것은 열정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즉, 현실과 관계없이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젊은 시절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 물질적 이익을 따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 순수한 이상을 추구하는 노래가 하늘로 올라가서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는 것이다. ‘별똥별’은 유성을 뜻하는데, 위대한 인물이 죽으면 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이로 미루어, 순수한 이상을 추구한 노래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때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는 소설의 보선과 같은 구실을 한다. 즉, 젊은 날의 순수와 열정이 사라지게 됨을 암시하는 것이다 혹은 젊은 날의 고민들이 아름다운 것이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1-19행 : [과거] 젊은 시절의 순수한 이상과 열정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 시간의 경과, 비약이 나타났다. 해당 구절은 1연의 1행과 대응되는 구절로, 많은 시간이 흐르고 삶의 태도에 변화가 있음을 암시한다. 이후에는 과거와 대비되는 현재의 모습이 나오게 된다.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 18년이 지난 현재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현실에 안주하여 기득권을 지키려는 소시민적인 모습이다. 여기서의 ‘무엇’은 7,8행의 ‘무엇’과는 대조적인 의미를 가질 것이다.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 여기서 ‘넥타이’를 맨 것은, 현실에 얽매이고 구속된 모습을 상징한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 순수함이 사라진 이해 타산적인 행위가 나열되어 있다. ‘회비’, ‘처자식들의 안부’, ‘월급’,‘ 치솟는 물가’는 모두 이해타산적인 삶, 현실에 구속된 삶을 나타내는 소재이다.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 여기서 ‘즐겁게’는 사전적인 의미와는 다르게 ‘남의 이야기를 하듯 진지함이 없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진지함 없이 요즘 세상은 말이야~라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한탄하는 것이다.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 목소리가 낮추는 일이 익숙해진 상황이다. 순수한 이상이나 가치관 등을 숨기고 사회의 분위기에 맞춰서 사는 것이 익숙한, 소시민으로 길들여진 모습이 나타난다. 이는 당시 사회의 억압적인 분위기를 암시한다고도 볼 수 있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 꿈과 이상, 열정을 상실한 채, 생존을 위해 살고 있으며, 젊었을 때의 순수와 열정을 잃어버린 상황이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 과거와 달리 경제적으로 안정된 현재의 삶이 나타남(11행의 ‘대포’와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가 대비됨)과 동시에 형식적이고 의례저인 인간관계의 모습이 나타난다.

몇이서는 포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 ‘포커’, ‘춤’은 향락적인 삶을 나타내는 소재이다.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 ‘동승동’은 앞에 나온 ‘혜화동 로터리’ 근처로, 젊은 시절의 순수와 열정이 담긴 공간이다.

▶20-37행 : [현재] 이상과 열정을 잃고 현실에

속박된 삶을 살아가는 중년의 모습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 ‘돌돌 말은 달력’은 매년 되풀이되는 일상적 삶을 상징한다. 일상적 삶을 중시하고, 흐르는 시간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소시민적 삶을 나타내는 것이다.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 ‘오랜 방황’은 이상과 열정을 잃고 살아온 삶을 의미한다. 위에서 결국 젊은 시절의 순수와 열정이 담긴 공간인 ‘동승동’으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 온 곳’은 이상과 열정을 지닌 곳을 의미할 것이다.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은 이상과 열정을 지닌 것을 의미한다. 이때 ‘우리의 옛사랑’은 젊은 날의 순수한 이상과 열정을 의미하며, 화자가 그리워하는 대상이다.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 시간의 경과로 인해 변화된 모습이 나타난다.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과거의 순수함과 열정이 사라지고 변질된 것을 의미한다.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시간의 경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은 존재로, 화자를 반성하게 하는 사물이다. ‘플라타너스’와 ‘낯선 건물들’, ‘우리’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 ‘몇 개의 마른 잎’이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한 것을 보아, ‘마른 잎’이 반성의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몇 개의 마른 잎’은 소시민으로 주저앉은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일깨우는 존재인 것이다. 또한, 고개를 떨구는 모습을 통해 화자가 현재의 소시민적 삶에 대한 부끄러움을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부끄럽지 않은가 / 부끄럽지 않은가

→ 이는 바람이 화자에게 속삭여주는 말로, 소시민적 삶에 대한 반성을 일깨우는 소리이다. 실제로는 반성을 촉구하는 내면의 소리이다.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 ‘부끄럽지 않은가’라는 바람의 속삭임을 ‘귓전으로 흘’려 보냈음으로, 온전한 반성이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이다. 즉 순수한 열정을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이때 ‘바람의 속삭임’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 주며, 화자에게 반성의 계기를 만들어주는 소재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과 유사한 기능을 한다.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 순수함을 잃고 현실에 얽매인 행위이다.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 들어간 상황이다. 현실에 순응하고 타협하며 살아가는 삶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순수와 열정을 되찾지 못하고, 계속 소시민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늪’은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하며 부끄러움의 정서를 외면하려 발을 옮긴 곳으로, 소시민적인 삶의 굴레를 의미한다.

▶38-49행 : 변함없는 플라타너스 가로수를
바라보며 느끼는 소시민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